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카모토 류이치 (문단 편집) === 활동 === 솔로 데뷔전인 1976년 부터 [[슈가 베이브]] 출신의 [[오오누키 타에코]], [[야마시타 타츠로]]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츠치토리 토시유키와 같이 녹음한 Disappointment-Hateruma가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앨범이다. 솔로 데뷔 이전에 1978년 도쿄에서 열린 우주 박람회의 기념 앨범인 '宇宙(1978)'를 제작했으나, 신디사이저 음색과 다큐멘터리 멘트를 조합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작업물에 가깝고, 수록된 곡도 자신의 곡이 아닌 [[Joe Meek]]의 '[[Telstar]]'라는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앨범 한 구석에 조그맣게 올리는 데 그쳤다. 이후 1978년, 제대로 된 솔로 앨범인 [[https://www.youtube.com/watch?v=rGo7n6CMCcE|Thousand Knives]][* 앨범 풀네임이 'Thousand Knives Of Ryuichi Sakamoto'라서, 일부 웹사이트에서는 이 앨범의 제목을 'Thousand Knives of' 까지만 표기하는 [[OME]]스런 경우도 있다. 앨범의 타이틀 곡 첫머리에서 사카모토가 읊는 음성변조된 한시는 [[마오쩌둥]]이 [[정강산 투쟁]]을 두고 지은 시 《정강산》인데, 이후 싱글컷되면서 시 낭독은 빠졌다. 이 외에도 마지막 트랙 The End of Asia에서는 [[동방홍]]의 선율이 어레인지되어 활용되는 등, 앨범 전반에 걸쳐 당시 사카모토가 품고 있던 중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녹아있다.]를 내 주목을 받는다. 타이틀 곡인 Thousand Knives는 이후에도 각종 YMO 라이브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NIWifCCFi-I|#]] [[https://www.youtube.com/watch?v=6Z5sJJgX3GM|##]] [[https://www.youtube.com/watch?v=w85Of8Lk3dI|###]] [[https://www.youtube.com/watch?v=qjrQEtIzE3s|####]])이나 [[https://www.youtube.com/watch?v=VZdbcBi8d8s|YMO 앨범 버전]], 피아노 연주곡 버전 ([[https://www.youtube.com/watch?v=SHBXgrCoyQ8|#]] [[https://www.youtube.com/watch?v=jg6x2IXn8jk|##]])등등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우려먹힌다. 이 앨범을 발매한 뒤, 당시 이미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쌓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 등과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본인은 팝[* J-Pop을 비롯한 영미권 팝음악 전반.]에 문외한이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왜 그들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원래 친했던 둘의 앨범에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오가다 우연히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니 그게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였다. ||[[파일:249A775F-56A2-4C60-98CA-094F5E953C94.jpg|width=100%]]||[[파일:3A0C467D-7B15-49AD-B720-3B29E4353D7C.gif|width=100%]]|| || 사진 왼쪽부터 호소노 하루오미,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 || YMO 활동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 1983년 12월 '산개' (YMO는 해산을 스스로 이렇게 불렀다) 라이브 때의 모습이다.] || 사실 일본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으나, 레코드 회사에서 이들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밀어주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서구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인 전자음악이었고, 음악 전반에 깔린 팝과 락큰롤의 느낌, 동양인이 하는 최신 현대 음악에 대한 신비감이 섞여있었기 때문인지 서구에서 대히트를 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소식을 계속해서 자국민에게 전했고, 몇 달 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국민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때 느닷없이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탓에 인기에 대해 아무 면역(?)이 없던 YMO 멤버들은 집 밖에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시달렸고,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인기피증까지 앓았었다고 한다.[* 전자음악 관련해서 그룹 내 영향력이 컸기 때문도 있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얼굴이 [[핸섬|남자답게 잘생기기로]] 유명해서 특히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기에 자주 시달렸다고 한다. 평소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던 젊은 시절의 사카모토는 이를 매우 힘들어했다.] 호소노나 타카하시야 YMO 이전에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편이였으니 그렇다쳐도 Technopolis를 작곡하며 YMO 데뷔를 성사하였던 사카모토는 YMO로 갑자기 유명해졌으니…[* 이상의 개인력은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참고하였다. 흥미로운 내용이 더 많이 담겨있으니 천재의 삶을 알고 싶다면 자세한 것은 자서전을 참고할 것.] 당시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단연 [[https://www.youtube.com/watch?v=0HubIA-BGGI|Behind the Mask]]와 ~~[[https://www.youtube.com/watch?v=wJZYFUFMNOU|Rydeen]]~~[* 엄밀히 말하자면 이 곡은 YMO의 다른 멤버인 타카하시 유키히로의 곡이다. 사카모토의 곡이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jolZT9COgE|Tong Poo]].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이 가사를 덧붙여서 앨범 (시기 상으로 하필이면 세기의 앨범인 '''[[Thriller]]'''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에 리메이크되어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모종의 이유로 빠졌고[* 사카모토 본인 말에 의하면 마이클 잭슨에 대해 잘 모르고 딱히 팔고 싶은 생각이 크질 않아서 생각없이 라이선스 비용을 크게 불렀더니 그냥 포기했더란 말이 있다. 곡이 들어갈 뻔했던 MJ 앨범이 그 [[Thriller]]였으니 이후 그냥 제발 넣어달라고 할 걸 많이 후회했다고 농담삼아 한 이야기. 다른 썰로는 앨범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가 앨범이 너무 댄스곡 투성이라 완성도를 위해 반대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에릭 클랩튼]]이 락버전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Xt9UXxWVr6k&feature=related|리메이크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사망 후 유작으로 발매된 앨범에 댄스풍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OFbhJdfhmOY|재차 어레인지된 버전]]이 들어갔다.[* 마이클 잭슨의 초기 데모는 Thriller가 발매된 지 40년이 지나서야 ~~오래 전부터 돈독에 오른~~ 소니 뮤직에 의해 공개되었다. [[https://youtu.be/imjqy5lStQg|Behind the Mask (Mike's Mix)]]] 전자음악과 마찬가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전자게임을 뮤직비디오로 활용한 [[https://www.youtube.com/watch?v=q3XqVBdjNM0|Computer Game]]도 유명하다. YMO 막바지에는 J-pop 분위기의 가벼운 곡들을 많이 냈으며 보컬로도 활동하여 당시 일본에서 '''요즘 가장 귀여운 아저씨들'''로 불렸다고 한다. 다양한 리메이크가 된 [[https://youtu.be/24bRSUeITXc?si=j9WBWaPGl18G4y17|君に、胸キュン]]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보면 상당히 맛간 느낌으로 역시 천재는 범상치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노래 자체가 흥겹고 귀엽기에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된다. 이 곡 외에도 YMO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말 그대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준다. YMO 활동으로 유명해지자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주연과 OST를 맡았다. 영국의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로 나오는데, [[데이비드 보위]]와의 격렬한 키스신(!)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 테마곡인 [[https://www.youtube.com/watch?v=1OZDaRhHHyM|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영화보다 유명해져서 사카모토나 영화를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모두가 알 정도다.[* Croatian Rhapsody로 유명한 [[막심 므라비차]]가 이 곡을 커버한 것도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로튼 그래프티]], [[우타다 히카루]], [[FACT(밴드)]] 등의 아티스트들이 커버를 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영화 내용이 문제[* 축약하자면, 어느 강제징용 된 조선인 군속이 소속 부대에 수감되어있던 연합군 포로들 중 한 명과 눈이 맞아서 사고를 쳤다가 걸려서 처형(할복)당하는 부분. '군인'과 '포로'라는 단어에서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듯이 [[동성애|남성들끼리]] 일어난 일이다. 애초에 영화 전체가 지금도 그렇지만 이 영화가 발표된 1980년대에는 문제가 안 될라야 안 될 수가 없는 [[동성애]]를 영화 내에서 중요한 장치로 매우 진하게 깔고 있는데다가, 전술한 '조선인이 부당하게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전개' + '조선인이 동성애를 저지르는 전개'에 당시는 일본문화가 개방될 수 없던 상황이라는 압도적인 쓰리 콤보 때문에 당연히 한국에서 정발이 될 리가 없었다.]가 되어서 정발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불법 공유|음악 자체는 여러차례 대중매체에서 재생되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듣게 되면 '어 그거!'할만큼 은근 인지도가 있는 명곡이다. ||[[파일:6908C456-8629-4919-A878-A400FB4B61E7.jpg|width=100%]]||[[파일:45046F64-2513-45C8-9293-60DF516ABB3F.jpg|width=100%]]|| || '''<[[전장의 크리스마스]]>''' ||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중 인물을 연기했다.[* OST를 맡기려는 감독에게 무슨 호기였는지 배역을 맡겨주면 한다고 했다고. 나중에 연기도 너무 어렵고 곡도 잘 안나와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배역은 [[푸이]]와 [[만주국]]을 배후 조종한 [[아마카스 마사히코]] [[예비역]] [[일본 육군]] [[대위]]로 분했다.[* 한국어 더빙판에서는 [[이정구]]가 이 배역을 맡음.] 테마곡 [[http://youtu.be/PcGY0dStHuA|Last Emperor]]와, [[http://youtu.be/8tKfYwc4zxA|Rain]]이 유명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77ECE2E-BC93-485C-BD69-FDC3E446E4ED.jpg|width=100%]]}}}|| || <[[마지막 황제]]> 출연 당시 사카모토 류이치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을 맡기도 했다.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 뮤지션. 근데 의외로 게임 음악에 여러차례 참여 했는데, 89년도 PC엔진판 [[천외마경]]을 비롯한 여러 게임 음악을 맡았고, [[드림캐스트]]를 처음 구동하면 골뱅이 로고와 함께 흘러나오는 오프닝 콘솔 뮤직도 그의 작품이다. 'L.O.L.: Lack of Love'에서는 OST와 함께 시나리오 라이터도 맡았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일은 거의 없으나, 단 하나 [[왕립우주군]]에서만 참여해 음악을 맡았다.[* 이 때 [[가이낙스]]에서 보내준 콘티를 보고 프레임 단위까지 타이밍을 맞춰서 OST를 썼는데, 정작 완성된 영화는 콘티와는 상당히 다르게 편집되어서 장면과 음악이 전혀 싱크가 맞지 않아 크게 실망했다는 일화가 있다.] 위에서 설명한 YMO 시절 '君に、胸キュン'의 수많은 리메이크 곡 중 하나는 [[마리아 홀릭]] 1기 엔딩에도 쓰였고, 이로 인해 오덕계에서도 YMO가 주목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그나 YMO의 곡들이 리메이크된 경우는 많다. 2013년 5월에는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과 함께 16년 만에 오케스트라 협업 공연을 선보였다. 약 1년 뒤인 2014년 4월 역시 [[http://www.yes24.com/Product/Goods/67478747|Playing the Orchestra 2014]]를 성황리에 마쳤지만, 같은 해 7월 10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인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며 당분간 음악활동을 중지할 것을 밝혔다.[* 다만 담배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데 공연 영상을 보면 연주를 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인트로 영상에서도 피우는 모습이 보이는것을 보아 실제로 흡연자인 모양이다. 인터넷에도 흡연 장면이 꽤 있다.] 2015년 암 투병 이후 첫 복귀작을 발표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OST라고 한다.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하며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설을 통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함께 행동하겠다고 했다.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11944#_enliple|#]] 위안부 관련해서도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며, 이를 보고 극우단체에서는 재일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일본 지지통신 11일 보도에 따르면 사카모토 류이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5)'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의 음악가 알바 노토와 수상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고 한다. 알바 노토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전부터 공동으로 앰비언트 뮤직을 작업하며 앨범도 여러 장을 발표할 만큼 음악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2021년 1월 21일 본인의 웹페이지를 통해 [[직장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두 번째 암투병이며 성공적으로 수술은 마쳤으나 앞으로 활동으로 인한 장거리 여행은 어려울 것이라 언급하였다. [[https://hochi.news/articles/20210121-OHT1T50119.html|#]] 2022년 6월 7일, 문예지 ‘신초’에 자신이 [[시한부]] 상태임을 밝혔다. 문예지에 류이치는 직장과 간 두 곳, 림프로 전이된 종양, 대장 30cm를 절제했다고 밝혔다. 암 판정 후, 치료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수술은 예정시간 8시간을 넘은 20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류이치는 “수술이 아닌 투약 방식으로 통원 치료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남은 시간 속에서 음악을 자유롭게 하며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696957?sid=104|#]][* 같은 [[YMO]]의 멤버였던 타카하시 유키히로도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NHK 홀에서 9월에 라이브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한 달 정도 지난 7월 12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뇌종양]] 투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공연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파일:skmt.jpg|width=100%]]|| 2022년 12월 11일-12일에 일본의 웹사이트 MUSIC/SLASH를 통해 오랜만에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를 갖는다. 제목은 . 보통은 실시간 라이브 공연을 있는 그대로 방송했지만,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지난 9월 몇 차례에 걸쳐 녹화를 마무리했다. 이것은 그 영상의 편집본이며, 이를 위해 뉴욕에서 영화 전문 스탭이 소집되었다. 12월의 인터넷 송출 이후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전세계에 필름 마켓에도 오를 계획이다. 이번 12월 11일에 MUSIC/SLASH를 통해 전달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 는 사실상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외적인 마지막 연주 모습이 될 것이다.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이 직접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코멘트를 한것이 보도자료에서는 꽤 가볍게 다뤄졌고, 이를 기사화 한 언론사들 역시 저마다 그의 코멘트를 각자 다른 무게로 해석하고 받아 적었는데, 현지 스탭들이 전해온 이야기에 따르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멘탈 컨디션 부분에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전과 다르게 너무나 수척해진 모습에 놀랐고, 그만큼 체력이 약해진 것이 눈에 띄게 보여서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일본의 뉴스 등을 통해 전해져왔다. 2022년 10월까지도 새로운 작품을 출시하긴 하지만, 대부분 2, 3년 전에 이미 제안 받았던 것들의 마감분이며, 그외 과거 작품들의 리마스터링 재발매, 아울러 그동안의 활동 전체를 회고하는 회고집 출간을 예정하는 등 살아 있을때 신경 써서 챙겨 볼 수 있는 건 다 마무리 짓고 가겠다는 의지가 여러 곳에서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과거 한국에서 사카모토 측과 업무를 경험해본 회사들의 이야기에서도 예를 들 수 있다. 사카모토 측은 일본에서 발매된 자신의 음반, 책이 한국에서 라이센스화 되는 것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만 특별히 발간되는 책이나 기타 상품들이 출시하는 경우 본인들의 기준에 만족할때까지 하나 하나 꼼꼼히 시간을 들여서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 외 지역에서 발매될 경우에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오랜 시간 동안 재활용 종이를 사용해서 상품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환경 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선을 지킨 용지를 사용해서 제작을 했는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서 인쇄를 했는지 확인을 한다든지. 또 일본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을 했는지 확인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전문가를 불러서 검수를 진행한다고. 그래서 다른 해외 뮤지션들보다 국내 발매가 좀 더 늦어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는 생을 마치기 전까지 충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마감해두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